영화 청바지 돌려입기를 보고

RPG/생각, 느낌 2011. 1. 16. 19:48 Posted by nefos

이 영화는 엄청 재미있거나, 유명한 영화가 아닙니다. (하지만 2편까지 제작됬지...) K-ON을 본 이후 린다린다린다를 찾아봤는데, 일본이 아닌 미국의 10대 여고생의 영화는 어떨까 싶은찰나 희한한 제목이 끌려 고른거 치곤 괜찮게 본 영화입니다. TRPG 카페 MT를 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지하철에서 꾸준히 핸드폰으로 보다가 다 못보고 집에 와서 마저 봤네요.

미국 10대 여고생 영화를 뜬금없이 소개해놓고 이게 RPG관련글이 어떻게 되냐 슬슬 의구심이 들텐데, 이 영화의 구조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먼저 줄거리를 이야기하면

뱃속에서부터 우연히 부모들끼리 알게되어 17년동안 우정을 쌓으며 자란 4명의 친구들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4명이 전부 떨어진적은 없었는데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각자 그리스, 멕시코, 미국 서부로 떨어지게 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우연히 들어간 옷가게에서 4명 모두 맞는 청바지를 발견합니다. 서로 떨어져있으나 함께한다는 의미로 1주일씩 돌려가며 입기로 하고, 다음 사람에게 배달해주면서 입은 동안 있었던 특별한 사건을 편지로 동봉하기로 합니다. 각자 나름대로의 사건을 겪으나 청바지를 통해 용기를 얻어 내적갈등을 극복하며 성장해나간다는 내용입니다.

구조를 설명하기 앞서 등장인물을 A,B,C,D라 하겠습니다.
A가 청바지를 가진 1주일간
A, B, C, D 이야기가 1~4컷짜리로 각각 한 씬씩 이루어지며
A는 B에게 청바지를 배달해, B가 청바지를 가진 1주일동안
A, B, C, D 이야기가 1~4컷짜리로 각각 한 씬씩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청바지가 계속 돌아가면서 모두의 이야기가 조금씩 순서대로 돌아갑니다.
영화에서는 각자 청바지를 3회정도 입습니다.
(개인당 씬으로는 12번인데 이게 4명이 번갈아 나오니까 정신 없을수도 있는데 의외로 깔끔한 편)

이쯤 되면 눈치가 좋은 사람은 무슨 룰이 떠오를텐데...
바로 프라임타임 어드벤처. (안방극장 대모험으로 많이 아는 룰)
순서대로 돌아가며 씬을 설정하고, 씬 내의 컷을 채우는 구조의 RPG죠. 그 과정에서 갈등이 있다고 설정했다면 그걸 해소하기 위해 판정을 할 뿐. 모두가 참여해서 모두의 이야기를 만드는 룰.

주연이 4명이나 되고 각자 완전히 다른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도 동시에 서로 영향력을 꾸준히 주는 놀라운 작품이란 말입니다. RPG에서 굳이 플레이어 넷이 한 팀으로 진행하거나, 서로 엮이는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지 않아도 그럴싸하게 가능한겠는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른 룰이면 무리겠지만 프라임타임 어드벤처라면 가능할듯 싶은 놀라운 규칙.

게시판 기반 RPG에 대해서도 오래동안 생각해왔었는데, 각자의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서로 영향을 준다는 부분에서도 많이 참고가 되었어요.

이 영화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짧은 씬들의 연속으로 줄줄이 짠다는건 어렵겠지요. 그러나 엉성하게 될지라도 충분히 개개인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동시에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걸 생각하게 되었고, 뭔가 꺼리를 제대로 건진 영화였다고 생각되네요.